미국 육아 정보/임신, 출산

미국 출산 후기 1 (입원, 유도분만, 에피듀럴, 카이저 병원 식단)

켠켠 2023. 7. 18. 14:44

2022년 8월 11일 새벽 3시 37분. 37주 0일 만에 드디어 아기가 태어났다. 임신 기간 내내 지속된 입덧과 너무 일찍 터져버린 양수 덕분에 2.54kg의 프리미로 태어난 아기. 황달도 무척이나 심했고 기력이 없어서 젖도 잘 못 빨았는데 지금은 잠시도 쉬지 않는 에너자이저 아기가 되어버렸다.
 

아기 세상에 태어나다

 
 
첫 내진 다음날, 양수가 터져버렸다
임신 36주. 출산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집을 정리하고 미역국을 끓여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 대청소를 하고, 한국에서 가져온 산모미역으로 미역국을 끓여 냉동실에 넣어두고, 미루었던 출산가방도 싸두었다. 

그리고 며칠 후 36주 체크업을 다녀왔다. 처음으로 내진이라는 것을 받았는데 정말 눈물 나게 아프더라. 하지만 자궁문이 거의 안 열렸으니(1cm) 다음주에 다시 체크해 보자는 진단을 받았다.

근데 이게 웬걸. 다음날 바로 양수가 터져버렸다. 내진 후에 양수가 터지는 경우가 있다고 듣긴 했는데 그게 나일 줄이야. 병원에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하니 지금 바로 짐 싸서 오라고 하더라. 출근한 남편에게 연락을 하고 집을 대강 정리한 뒤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도착 후 직원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작은 방. 진짜로 분만이 임박했는지 확인하는 검사실 같은 곳이었다. 여기서 몇 가지 검사를 한 후 아기가 곧 나올 것 같으면 분만실로 올라가고,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으면 집으로 다시 돌려보내진다고 한다. 하지만 간호사는 내 상태를 쓱 보더니 집에 안 가도 될 것 같다고, 축하한다고 했다 ㅋㅋㅋㅋㅋ

본격적인 검사를 위해 미리 준비되어 있는 산모용 가운으로 옷을 갈아입고 베드에 누웠다.

뒤가 훤히 뚫려 있는 개방적인 디자인의 산모용 가운


배에 태동검사(NST) 장치를 부착한 후 30분 동안 아기의 태동과 자궁 수축 정도, 아기와 산모의 심장박동수를 체크했다. 검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분만실로 올라가라는 허가가 떨어졌다.

검사 결과 기다리는 중



분만실에 입성하다
밤 10시가 넘은 시각. 드디어 분만실에 입성했다. 분만실은 생각보다 컸고, 시설도 나쁘지 않았다.

분만실 풍경

 
급하게 오느라 저녁도 못 먹고, 아쉬운 대로 샌드위치라도 싸 오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못해서 배가 몹시 고팠던 밤. 혹시 늦은 오후나 저녁에 출산을 하러 간다면 꼭 간단한 요깃거리를 챙겨가길 바란다. 분만실 한쪽 구석에 짐을 푼 후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낼 겸 기념사진을 찍었다.

안녕 여러분
저 곧 아기 낳아요

 
미국은 한국과 달리 아기를 낳기 전에 아기 이름을 미리 정해둔다. 하지만 우리는 고민만 하다 얼떨결에 병원에 온 터라 아기 이름을 정하지 못한 상태. 간호사가 아기 이름을 물어봤는데 아직 이름을 못 정했다고 하니 화이트보드에 아기 이름을 "?"로 표시했다. 민망하면서도 웃겼다. (이 아기의 이름은 나중에 Female Park으로 진화하게 된다.)


유도분만을 시작하다
나는 양수가 이미 터진 상태로 병원에 왔기 때문에 바로 유도분만을 시작했다. 자궁 수축을 도와주는 옥시토신과 감염을 막기 위한 항생제가 투여되었다. 모든 것이 다 끝나니 이미 밤 12시가 훌쩍 넘은 시간. 하루가 정말 길었는데 출산은 아직 시작도 안 한 거 실화일까.

그렇게 나는 침대에서, 남편은 소파베드에서 겨우 잠을 청했다. 하지만 블라인드 사이로 새어 나오는 네온사인의 불빛, 밤새 켜져 있던 기계들, 3시간에 한 번씩 항생제를 맞느라 자다 깨다를 반복한 덕분에 찌뿌둥한 아침을 맞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든 생각, ‘아.. 배고프다’. 그때 마침 간호사분이 배가 고플 거라고, 아침이 나올 때까지 남편과 같이 먹으라며 과자와 주스를 주고 가셨다. 감동받아서 울 뻔했다.
 

간호사님께서 주신 소중한 먹을거리

 
아침 9시. 과자와 주스를 흡입하고 입원 후 첫 내진을 받았다. 하지만 촉진제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cm만 열린 나의 자궁. 옥시토신 투여량을 늘리고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산모에게 치즈버거를 주는 미국 병원
미국에서 아기를 낳은 후 가장 많이 들은 질문. "미국에서는 애 낳고 뭐 먹어?" 그에 대한 나의 대답. ”치즈버거...??🍔”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나 산모식 따위는 없는 미국. 병원에 미역국을 싸가는 사람들도 있던데 나는 굳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안 챙겨갔다. 사실 미역국도 아기 낳고 3일만 먹었다. 
 

점심으로 먹은 치즈버거. 칼로리가 제일 높을 것 같아 선택했다. 최후의 만찬이었다.

 

못 먹는 음식이 있냐고 물어보길래 오이 못먹는다고 했는데 왜 오이가 당당하게 들어있는거지....

 
다른 출산 후기들에서는 메뉴판을 보고 메뉴를 고르던데 내가 입원했던 병원은 전화로 그날의 메뉴를 듣고 바로 이야기해줘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뜻밖의 전화영어) 입원해 있는 동안 아침은 프렌치토스트, 팬케이크, 스크램블 에그를 먹었고 점심과 저녁은 버거, 연어, 닭가슴살 구이, 샐러드 등을 먹었다. 매 끼니마다 디저트랑 과일도 고를 수 있었는데 출산 후에는 모유수유하느라 배가 고파서 디저트랑 과일은 종류별로 다 달라고 했다. 

병원밥에 별 기대를 안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먹을만했다. 기내식 먹는 느낌이랄까.
 

입원 후 처음으로 먹은 병원 아침밥. 프렌치 토스트

계란샐러드, 빵, 채소, 과일

스크램블 에그, 베이컨, 감자, 과일

 

구운연어, 구운야채, 과일, 케이크

 

팬케이크, 스크림블에그, 과일, 시리얼

 

닭구이, 밥, 샐러드, 케이크

 

 
에피듀럴(무통)을 맞다
오후 1시. 의사가 에피듀럴을 맞을 것인지 물어봤다. 사실 입원하기 전까지는 당연히 맞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진통이 심하지 않기도 했고, 막상 에피듀럴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까 ’꼭 맞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의사에게 에피듀럴을 맞는 게 좋을지 물어봤으나 돌아온 답변은... ”It's your choice. “
 

출처: https://www.medindia.net/patientinfo/epidural-anesthesia.htm


어차피 당장 무통을 맞을 수도 없기에 (에피듀럴은 자궁이 3cm는 열려야 맞을 수 있다) 좀 더 고민해 보기로 했다. 다만 의사가 내 진통 수치를 보더니 이미 통증이 상당할 거라고, 분만까지 체력을 아껴놓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진통제(모르핀) 투여를 권했다. 사실 이때 진통 정도는 평소 생리통 정도였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잘 참고 있었던 것이 함정.

하지만 양수가 터진 지 20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열릴 생각을 안 하는 나의 자궁... 오늘도 분만에 실패하는 것인가!!
 
오후 4시 반. 점점 심해지는 진통을 참으며 내진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옆방에서 엄청난 비명소리가 계속 들리기 시작했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지금 분만을 하고 있는 산모인데 에피듀럴 없이 쌩으로 진통을 겪고 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고민은 구매를 늦출 뿐이라고 했던가. 침착하게 간호사에게 바로 에피듀럴을 놔달라고 했다.
 
오후 5시. 에피듀럴을 맞았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에피듀럴을 못 맞았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 옆 방 산모에게 무한한 감사를 느꼈다.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옆으로 누워서 손으로 다리를 잡고, 새우처럼 등을 동그랗게 말았다. 그 후 척추에 바늘이 쑤욱하고 들어왔는데 진통 때문인지 별로 아프진 않았다. 에피듀럴은 효과가 돌기까지 20~30분 정도 걸리고, 밥은 못 먹고 상온상태의 주스/물/사탕만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아기는 언제 나오는 거야? 
생각보다 무통이 잘 듣지 않아 에피듀럴 투여량을 늘리고 카테터(소변줄)를 연결했다. 에피듀럴을 맞으면 하반신에 감각이 없어져서 화장실을 가기 어렵기 때문.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서 아예 걸을 수가 없더라.

몸에 약기운이 돌아서 그런지 졸음이 몰려와 안대 끼고 한숨 잤다. 혹시 아직 출산 전이라면 꼭 병원에 수면안대를 챙겨가길 바란다. 햇빛과 기계 불빛으로부터 당신을 보호해 줄 것이다. 강력 추천한다.
 
오후 8시 45분. 또다시 내진. 에피듀럴 덕분에 아무 감각이 없었다. 현대의학 만세! 간호사 말로는 6-7cm가 열려서 곧 분만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근데 아기 머리가 아래에 있긴 한데 고개가 이상하게 꺾여있어서 아기가 계속 그 자세로 있으면 분만이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신기한 건 태어난 이후에도 한동안 그 자세를 계속하고 있었다는 것. 아기 자세 조정 겸 골반 확장 겸 옆으로 누워서 다리에 짐볼을 꼈다. 
 
오후 10시 반. 또다시 찾아온 내진의 시간. 9센치가 열렸고, fetal station이 드디어 마이너스에서 0으로 바뀌었다. station은 아기 머리가 얼마만큼 아래로 내려왔는지 이야기할 때 쓰는 단어이다. -면 아직 엄마 뱃속에 있는 것이고, 0은 나오기 직전, +는 이미 아기 머리가 밖으로 나왔음을 의미한다.


분만 시간은 앞으로 2시간 후인 다음날 새벽 12시 30분(임신 37주 0일, 0시 30분)으로 결정되었다. 분만이 늦어진 이유는 자궁이 늦게 열린 것도 있지만 아기가 너무 작고 주수가 빨라서 병원에서 아기를 최대한 엄마 뱃속에 있다가 내보내려고 했기 때문. 
 
[참고] 임신 37주 미만에 출산한 아기는 미숙아라고 부른다.

 
드디어 분만 시작
오후 11시 반. 미드와이프가 인사 차 나의 병실을 방문했다. 한국에서는 의사만 진료를 하고 아기를 받을 수 있지만 미국은 의사가 아니더라도 이게 가능하다. 나의 경우 임신 중에는 간호사지만 의사의 업무도 볼 수 있는 Nurse practitoner(임상간호사, NP)에게 계속 진료를 받았고, 출산은 Midwife(조산사)와 함께했다. 
 
미드와이프는 내 상태를 체크한 후 기분이 어떤지 물어보았다. “이제 더 이상 입덧을 겪지 않아도 되어서 너무 행복하다. 맛있는 것 많이 먹을 거다"라고 기운차게 대답했다. 미드와이프는 내 대답을 듣고 웃으며 걱정 안 해도 되겠다고, 조금 이따 보자고 하며 병실을 나갔다. 
 
새벽 12시 반. 푸시가 시작되었다. 
 
 
 
분량 조절 실패로 두 편으로 나눠서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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